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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좋은 것들

튤립 열풍에서 배우는 비트코인 상황




▲비트코인 열풍이 ‘광풍’으로 치닫고 있다. ▲일부 해외 언론은 오늘날의 비트코인 열풍을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튤립 열풍에 비유하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튤립 가격이 폭등을 거듭하면서, 당시 최고급 튤립은 저임금 근로자의 50년 연봉과 맞먹는 가격으로 거래됐다. ▲당시의 튤립 열풍은 어떻게 진행됐고, 어떻게 결말을 맺었을까? ▲투기의 역사를 다룬 4권의 책 ①‘버블의 탄생’(피터 가버), ②‘금융투기의 역사’(에드워드 챈슬러), ③‘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마이크 대시), ④‘대중의 미망과 광기’(찰스 맥케이)을 중심으로, 1630년대 네덜란드 튤립 투기 열풍을 정리했다.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이 올해 들어서만 16배까지 폭등했다. “이대로라면 비트코인 한 개에 1억원까지 간다”는 근거없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암호화폐 가격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폭등하면서 지금의 비트코인 광풍을 163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열풍에 빗대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비트코인과 ‘튤립 마니아’는 공통점이 많다”고 12월 8일 보도했다. 러시아 매체 러시아투데이(RT)는 12월 13일 “비트코인은 역사상 가장 큰 버블로 알려진 ‘튤립 마니아’를 능가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 매체가 언급한 ‘튤립 마니아’(Tulip Mania)는 네덜란드 튤립 투기와 그에 따른 버블 현상을 의미하는 용어다. 네덜란드에서 튤립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것은 1630년대, 특히 1634~1637년 사이에 극에 달했다.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인 국제금융 전문가 피터 가버(Peter Garber)는 투기의 가장 적합한 예로 네덜란드의 ‘튤립 마니아’를 꼽았다. 이 말은 ‘투기 광풍’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버블의 탄생’/이용우 옮김, 아르케, 2011년)

최고급 튤립 한 송이 값이 집 한 채 가격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터키에서 수입된 튤립은 막대한 재산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집을 담보로 잡히고 튤립 뿌리를 구입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왜 이렇게 엄청난 튤립 광풍이 불어온 것일까. 1600년대는 네덜란드가 직물산업의 호황과 식민지 개척을 통해 황금기를 맞고 있던 때였다. 네덜란드는 1602년 동인도 회사, 1622년 서인도 회사를 각각 설립하면서 동서양으로부터 막대한 부를 긁어 모았다. 

영국의 칼럼니스트이자 경제 분석가인 에드워드 챈슬러(Edward Chancellor)는 ‘금융투기의 역사’라는 책에서 당시 네덜란드의 국민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늘어난 부에 취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머리에선 검약 정신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들은 소비지향적인 국민이 되었다. 풍요와 오만에 젖은 네덜란드인들은 과시욕을 드러냈고, 더 큰 부를 안겨줄 대상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튤립이었다.> (‘금융투기의 역사’ 강남규 옮김,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001년)
 
네덜란드인들은 꽃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좁은 국토에 심을 꽃이 필요했다. 에드워드 챈슬러는 “좁지만 기름진 땅은 튤립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환상의 조건이었다”고 했다. 

터키에서 들여온 튤립은 당시의 최고가 수입품이었다. 영국 저널리스트 마이크 대시(Mike Dash)는 “꽃이 무슨 돈이 될까 하겠지만 당시에는 이것들이 암스테르담 부두에 쌓여 있는 물건 중에서 가장 비싼 것들이었다”고 했다. (‘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 정우연 옮김, 지호, 2002년)

투기의 역사를 다룬 고전 ‘대중의 미망과 광기’(이윤섭 옮김, 도서출판 창해, 2004년)를 쓴 영국 언론인 찰스 맥케이(Charles Mackey)의 글도 다르지 않다. 

“1634년 튤립을 소유하려는 네덜란드인의 열망은 도를 넘어, 다른 산업은 팽개치고 모든 사람이 튤립 거래에 나섰다. 귀족, 도시민, 농장주, 기계공, 선원, 심지어 굴뚝 청소부까지 튤립 투기에 나섰다. 사람들은 집과 토지를 헐값에 처분하고 튤립을 샀다.”  





“귀족부터 청소부까지…전 국민이 튤립 투기” 

네덜란드인들이 앞다퉈 사들인 튤립 가격은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다음은 에드워드 챈슬러의 글이다.  

<네덜란드인들은 꽃의 색깔에 따라 튤립을 다양하게 분류했다. 위계 서열에 따라 군계급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 최상급 꽃은 잎에 황실을 상징하는 붉은 줄무늬가 있어서 ‘황제’라고 불렀고, 이어 총독, 제독, 장군 순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황제 튤립은 당시 암스테르담 시내의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가격에 거래 되었다. 노란색 평범한 튤립 한 뿌리는 20길더(화폐 단위)에서 단 일주일 만에 1200길더까지 치솟기도 했다. 당시 네덜란드 노동자들이 1년 동안 벌어들인 돈은 200~400길더 수준이었다. 한 가정의 1년 생활비는 보통 300길더 정도였다. 튤립 한 뿌리 값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비쌌는지를 알 수 있다.>

“뿌리 한 개가 근로자 연봉의 3~4배”

튤립 가격이 정점이 달했을 때는, 평범한 알뿌리 하나가 노동자 1년 치 수입의 3~4배에 달했다. 튤립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라는 품종이다. 1630년 초 구근 한 개당 가격이 500길더였는데, 1637년 1월에는 1만 길더까지 뛰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네덜란드 노동자들의 연평균 연봉이 200~400길더 수준이었다. 1만 길더는 무려 50년치 연봉에 육박한다.

튤립시장이 여러 면에서 현재의 주식시장과 닮았다는 분석도 있다. 에드워드 챈슬러는 “엄청난 고가에 매매됐던 황제 튤립 뿌리는 블루칩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평범한 튤립은 돈이 별로 없는 개미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중소형주인 셈”이라고 했다.  

피어나지 않은 튤립도 미리 거래… 선물거래의 시작

1635년 가을부터는 거래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선물 거래까지 이뤄진 것이다. 마이크 대시는 다음과 같이 썼다.

<꽃장수들은 소유하고 있는 튤립만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땅 속에 있는 것까지 사고 팔게 되었다. 수개월 내에 인도되지 않을 구근을 구매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튤립 상인들은 오늘날의 선물시장 같은 체계를 만들어냈다. 또 약속어음의 도입으로 튤립 매매는 일년 내내 가능한 사업이 되었다. 그것은 거래를 투기로 바꾸어 놓았다.>

이같은 투기 열풍이 마냥 지속되지는 않았다. 1637년 2월을 기점으로 튤립 시장이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한 것. 심리적인 불안감 이외에 별다른 원인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피해자들이었다. 집을 저당 잡히고 가재도구를 팔아 일확천금을 노렸던 사람들이 회복할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귀족들은 부채를 감당할 수 없어 갖고 있던 영지를 외국 귀족에게 넘겨야 했고, 상인들은 파산해야 했다. 이 사태는 당시 유럽 최고의 부국이었던 네덜란드가, 부의 주도권을 영국으로 넘기게 되는 주요 계기가 된다. 비극의 주인공 중에는 유명한 풍경화가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 1596~1656년)도 있었다.

귀족들은 영지 넘기고 상인들은 파산

호이엔은 튤립 시장 붕괴 직전, 900길더와 그림 두 점을 주고 튤립 구근들을 사들였다. 그에게 튤립을 판 사람은 헤이그 시장인 알베르트 반 라벤스테인이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호이엔은 단박에 파산했다. 그는 이후 20년 동안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그림을 그려야 했고, 결국 빚을 다 갚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의 저자 마이크 대시는 그의 비참한 결말을 이렇게 적고 있다. 

<호이엔은 1656년 죽을 때까지 지불 불능자 상태로 지냈다. 그는 다수의 훌륭한 풍경화들과 총 789길더의 빚을 남겼다. 그가 튤립 구근 거래에서 돈을 벌었다면 그 그림들 중 대부분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튤립 열풍 최후의 희생자였다.>

튤립 열풍은 1637년 2월 3일 갑자기 멈춰섰다. 이날 느닷없이 가격이 폭락한 것. 사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어음이 부도가 나면서 파산이 속출했다. 네덜란드가 온통 튤립 열풍에 휩싸였기 때문에 채무자와 채권자의 구별도 뚜렷하지 않았다. 돈을 빌려 투자를 하고, 여기서 번 돈으로 다시 이자놀이를 하는 물고 물리는 관계가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할 수 없이 모든 튤립 거래를 일시에 정지시켰다. 튤립 소동은 결국 몇몇의 벼락부자들과 다수의 희생자를 남긴채 역사의 해프닝으로 기록됐다. 

가격 폭등, 선물거래 등 당시 상황과 유사

오늘날의 비트코인 열풍을 과거의 튤립 열풍에 비유하는 이유는 순식간에 가격이 급상승 했다는 점이다. 미국 시카고 옵션거래소에서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시작했다는 점도, 튤립을 놓고 선물거래를 했던 당시 상황과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과거의 튤립 마니아는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발생한 현상이지만, 현재의 비트코인 열풍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글로벌 현상이다. 초유의 비트코인 글로벌 광풍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직 모른다. 수 년 안에 버블이 붕괴될지, 반대로 천정부지로 한없이 치솟을지 예측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출처 : 팩트올